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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도깨비> 속 '이생의 기억을 지워주는 차' 한 잔

주눈꽃 2020. 10. 2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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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도깨비> 속 '이생의 기억을 지워주는 차' 한 잔

 

 

드라마 <도깨비>를 보면 배우 이동욱이 연기하는 저승사자가 죽은이들(망자)에게 차를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생의 기억을 모두 지워줍니다'라고 멋있게 말하면서.

그 차를 받아는 분이 '이걸 꼭 마셔야하나요?'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살아있는 동안 힘들었던 일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들과의 행복한 추억들도 많을 테니까 차를 마셔야할 지 고민이 될 것이다. 나라면, 내가 만약에 죽어서 저승사자 앞에 앉아 이 차를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마실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고민해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저승사자는 마시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했지만, 저승에서의 삶에서는 이생의 기억을 하나도 못하는 사람들만 있을까? 마시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차를 마시지 않으면, 이생의 기억을 가지고 저승에서도 행복하게 살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살 것 같다. 그럼 차를 마시게 된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슬퍼하고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하늘에서는 전혀 알지 못할 거고, 그들을 그리워할 수조차 없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서 만났을 때 서로 차를 마시고 알아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서운할까? 이런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대부분의 생각들은 기억을 지웠을 때의 안 좋은 생각들이었고,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자 마시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기울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단호하게 '마시지 않겠다'고 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수많은 이유를 들었는데도 나는 차를 마실지 말지 선택하지 못하겠다는 답을 했다. 좀 더 생각을 들여다보니, 저승사자가 마시는 게 좋다고 조언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사실 두려운 것이다. 그 조언을 무시하고 내가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가 혹시나 내가 그 선택을 후회할까봐.

이생에서의 기억이 저승에서 사는 동안 나를 힘들게 한다면, 기억을 잊는 게 좋을 것이다. 아쉽지만, 앞으로의 삶이 더 중요하니까(죽은 사람의 앞날을 '삶'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더 많았던 삶이었다면 '기억을 하는 것'이 '기억하고 싶은 것을 잊어버리는 것'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충격적인 일이 내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트라우마가 되었을 때, 그리고 그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을 때, 그 무력감이 나를 힘들게 하면 이승이든 저승이든 그 곳이 바로 지옥일 것이다. 내게도 행복한 일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잊어도 될 만큼 혼자서는 지울수 없는 힘든 기억이 있다면 주저 없이 차를 마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잊혀질 기억들이 더 좋은 기억이 많기에 아쉬운 모양이다.

(원고지 7.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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