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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에세이 24

음주에세이 <술 못하는 애주가> 비오는 부산

“아 왜 날씨가 맨날 이래?” 머리와 옷가지가 휘날리는 부산역 앞. 태어나서 부산 여행은 두 번이지만 매번 갈 때마다 비가 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행이었는데 왜 매번 비가 오는 걸까. 어딜 가든 큰 맘 먹고 집을 나서는 날이면 대부분 비가 왔다. 심지어 신혼여행으로 갔던 하와이에서도 비를 쫄딱 맞으며 돌아다녔으니까. 그래서 내 주변의 지인들은 나를 보고 비를 몰고 다닌다 했을 정도. 친구와 처음 부산을 갔던 날은 날씨가 나쁘지 않았다. 3박 4일로 떠났던 여행의 막바지에서 특히나 가장 기대했던 바닷가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강풍이 부는 바람에 우산도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낮에는 덥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던 9월의 어느 날 우리는 그 비바람에 바다의 경치를 감상하기에 너무 추웠다. 해운대 해수욕..

음주에세이 <술 못하는 애주가> 잉여로운 하루

쉬는 날은 쉬어야 한다. 누군가를 만날 약속도 하기 싫고 그냥 하루 종일 집에만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백수처럼 하루를 보내고 싶은 그런 날. 머리를 상투처럼 쫙 쪼매서 묶고 후줄근한 츄리닝으로 집에서 밀린 드라마나 만화책을 보면서 침대와 한 몸이 되는 그런 날이라도 왠지 술은 고고하게 마시고 싶다. 이런 날은 오히려 소주나 맥주보다는 와인을 마시는 게 좋다. 친구가 집에서 혼자 청승떨지 말고 나오라고 해도 나가기 싫을 만큼 맛있고, 간단한 안주와 함께라면 나의 휴일은 이로써 완벽해진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는 이런 휴일에는 항상 드라마를 찾아서 본다. 영화는 아무리 길어도 2시간에서 2시간 반이면 끝나버리고 만다. 하루 중 2시간 반은 너무도 짧다. 이미 종영한 드라마를 보면 1..

음주에세이 <술 못하는 애주가> 심야책방

책과 술. 이 둘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지만 예로부터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단다. 술 좋아하는 사람 중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이야기. 저녁시간 이후에 카페에 가서 독서를 하려고 할 때 커피를 마시기에는 늦은 시간이라 부담되곤 한다. 그럴 때면 맥주 한 잔을 조용히 마시면서 책 읽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맥주 주문할 수 있는 바에 가더라도 대부분은 여럿이 모여 가는 술집이라 혼자가기가 왠지 민망하기 일쑤. 술집으로 가서 책을 읽기에는 음악이 시끄럽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집중력을 흔든다. 조명이 어두워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책을 읽으면서 카페에서 맥주를 함께 마실 수 있는 곳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책과..

음주에세이 <술 못하는 애주가> 그것이 알고싶다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나는 친구들과 함께 한 잔 하면 꼭 2차를 노래방에 갔었다. 시원하게 내지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니까 노래방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의 남편과도 같이 종종 가곤 했었는데 결혼하고 나서 한 1년 정도 노래방을 끊은 적이 있었다. 노래방에 갔을 때 싸운 건지 내가 화가 난 건지 노래방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있는데도 중간에 내가 뛰쳐나와 집에 가버린 기억이 있다. (그 와중에도 노래방 시간이 남은 게 지금도 아까운 모양이다.) 중요한 것은 왜 그랬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땜에 내가 기분이 나빴던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없다. 그 날 이후로 노래방 가는 게 싫었다. 아니, 남편하고 둘이 가면 또 싸우거나 그때처럼 다툴까봐 겁이 났던 것 같다. 둘이서 가는 걸 의도..

음주에세이 <술 못하는 애주가> 언제가 언제야?

“언제 한 잔 해야지~” 인사치레로 하는 이 말이 예전엔 참 싫었다. 진짜로 같이 술 마실 게 아니라면 상대방에세 이런 마음에 없는 말을 안 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정말 기대할 수도 있으니까. 기대하면 실망하고, 실망하면 그게 상처가 되니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누가 나에게 그렇게 말할때면 “언제요?”라고 반문 하곤 했었다. 모두에게 다 그렇게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물어보면 상대방이 정말로 나와 만날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정말 진심으로 나와 시간을 보낼 사람이라면 구체적으로 언제쯤 시간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럼 나도 내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얘기해서 약속을 그 자리에서 바로 잡거나 언제쯤 ..

음주에세이 <술 못하는 애주가> 너 족발 좀 뜯어봤니?

비서 시절, 나는 회식 장소를 정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풍채가 좋고 목청이 큰 어르신들이라 몇 명만 모여도 시장에 들어온 것 마냥 시끌벅적했다. 그런 우리의 회식은 다른 손님들에게도 민폐니까. 따로 방이 있는 자리로 예약하길 바라셨다. 마침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족발 집이 있어서 가게 되었다. 문을 닫아 놓고 먹을 수 있는 방이고 깔끔하고 넓어서 마음에 들어하셨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주문할때 단가에 비해 적은 양. 아무래도 1만원대의 고기를 몇 인분씩 구워먹는 것보다는 족발 대자로 몇개 시키는 것이 훨씬 비싸다. 그런데 큰 접시에 나오는 썰어진 살코기 밑에는 큰 뼈가 있다. 쌈도 싸 먹어 보고, 막국수도 시켜먹고 했지만 배가 별로 안 찼다. 내가 위대한 편이긴 하지만 다행히 나만 그런게 아니었..

음주에세이 <술 못하는 애주가> 안주에는 귀천이 없다

한 남자가 혼자 술을 마시기 위해 한 식당으로 간다. 싱싱하고 김이 모락모락나는 게찜이 나왔다. 남자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게를 잡고 부러뜨려 게살을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보들하고 부드러운 그 게살을 한껏 즐기고는 목이 찢어져라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한 여자는 집에서 남은 일을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있다. 게를 먹는 남자의 SNS에 올린 사진을 보고 나서는 맥주가 고파졌다. 하지만 그녀의 자취방에서는 그렇게 게를 삶아 먹을 여유가 없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시며 꽃게 모양의 과자를 먹었다. 드라마 의 한 장면이다. 안주에는 귀천이 없다. 내 앞에 없는 그 맛있어 보이는 게 사진이 내 안주가 될 수는 없다. 현대판 자린고비가 아니라면.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 ..

음주에세이 <술 못하는 애주가> 싱싱한 맥주의 맛

대학졸업여행으로 과에서 여행을 갔을 때 우연치 않게 방문하게 된 맥주공장. 견학 프로그램이 있어서 단체로 맥주공장 견학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편하게 슈퍼나 편의점에서 구입해서 사 마시는 그 맥주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투명 유리 창문을 통해 공장 내부를 보는 경험을 했다. 구경하는 중간 중간 벽면에는 맥주 회사의 CF 등의 변천사를 볼 수 있게 꾸며져 있어서 견학 내내 신기하고 또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맥주 회사의 역사를 다 훑어볼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치 않으니까. 맥주 공장 견학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시간은 바로 맥주 시음하는 시간! 견학하면서 시음할 수 있다고 해서 언제나 맛볼 수 있나 내내 생각했는데 드디어 그 시간이 왔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마지막 코스의 문이 열렸다. 맥주 ..

음주에세이 <술 못하는 애주가> 집나간 딸내미

‘집밥’하면 떠오르는 것. 김이 폴폴 나는 흰쌀밥, 매콤새콤하고 아삭하게 잘 익은 배추김치, 얕은 냄비에 무를 깔고 자작하게 끓여 나온 갈치조림, 달짝지근한 양념에 밥 비벼먹는게 좋았던 제육볶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전어구이였다. 스무살 때부터 대학교 기숙사를 시작으로 내내 자취를 하며 집에서 독립해 살았다. 매년 한 두달에 한번씩 내려가거나 바쁘면 명절에 한번 씩 내려가는 게 다였다. 9월 쯤 추석이 되면 항상 내려가는데 그때마다 전어회와 구이를 찾아 먹었다. 어릴땐 오히려 자주 먹지 않았던 건데, 사회 생활하며 숱하게 다닌 횟집들은 늦여름이 되면 어느새 전어철이라고 수족관 한가득 전어를 채워넣었다. 제철이라는 말에 집에 내려가면 시장에서 전어를 사와서 집에서 함께 먹었다. 흔히 횟집에..

음주에세이<술 못하는 애주가> 소개팅엔 삼쏘지

“소개팅 잘 하고 왔어?” “응~ 뭐, 그럭저럭” “왜, 별로야? 뭐했어?” “그냥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고 헤어졌지, 뭘 뭐해~” 친구가 빵 터졌다. 한참 웃은 후에야 친구가 말했다. “야, 너 답다~” “나다운게 뭔데?”하며 식상한 청춘 드라마 대사를 질러주고는 같이 웃었다. 나 답다니? 어색함을 푸는 데는 술이 딱이지 않나? 누군가의 소개로 만나 어색한 사이에 둘이 마주보고 앉아서 스파게티를 먹는다는 게 난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같이 조용한 곳에서 메뉴판을 보며 스파게티를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의 그 정적. 난 그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서버라도 어색해서 닭살이 돋을 것만 같다. 나의 소개팅 스타일은 항상 술이었다. 주말 저녁이든 평일 저녁이든 저녁에 만나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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