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에세이가 된다면/음주에세이 <술못하는 애주가>

음주에세이 <술 못하는 애주가> 안주에는 귀천이 없다

주눈꽃 2020. 11. 23.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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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혼자 술을 마시기 위해 한 식당으로 간다.
싱싱하고 김이 모락모락나는 게찜이 나왔다.
남자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게를 잡고 부러뜨려
게살을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보들하고 부드러운 그 게살을 한껏 즐기고는
목이 찢어져라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한 여자는
집에서 남은 일을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있다.
게를 먹는 남자의 SNS에 올린 사진을 보고 나서는
맥주가 고파졌다.
하지만 그녀의 자취방에서는
그렇게 게를 삶아 먹을 여유가 없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시며
꽃게 모양의 과자를 먹었다.

드라마 <혼술남녀>의 한 장면이다.
안주에는 귀천이 없다.
내 앞에 없는 그 맛있어 보이는 게 사진이
내 안주가 될 수는 없다.
현대판 자린고비가 아니라면.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
스무살에 가는 MT에서 혈기왕성한 동기들이
술보다는 안주를 싹쓸어버린 적이 있었다.
다들 마르고 예쁜 여자들만 있는 과라서
이렇게 잘 먹을 줄 몰랐는지 너무 적게 사왔었나 보다.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밤새 놀 수 있는 기회니까 그냥 자기 아쉬웠다.
술은 너무 많이 남았고, 안주는 과자밖에 없었다.
과자로만 먹다보니 입안이 까실까실해져서 그런지 다른게 먹고 싶었다.
다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술과 음료,
고기나 밥 먹을 때 먹으려고 준비한 김치가 있었다.
그 흔한 컵라면도 없었나 싶다.
김치를 꺼냈다.
아침에 라면이라도 사와서 끓여먹을까 싶어서
조금 남겨놓고 숙소에 있던 후라이팬에 김치를 볶기 시작했다.
새벽에 다들 자는 애들이 많아서
친구랑 둘이 그렇게 도둑처럼 살그머니, 손짓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TV소리도 볼륨 3으로 해놓고
볶음김치에 소주를 홀짝이며 그렇게 날을 샜다.

그때의 그 볶음김치를 먹으면서 우리는
‘먹을 것도 없는 MT에 왔다’며 신세한탄을 했을까?
아니다.
‘과자보다 훨씬 낫다’면서 웃었다.
물론
‘삼겹살 있었으면.. 크으~’ 이랬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다행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동기들 몰래 조용히 김치를 볶는 것도 그때는 그저 재미있었다.
후라이팬에 가스렌지가 닿아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야야, 쉿!!”
하면서도 까르르 거리고
이것도 다 지나면 추억이라고.

<혼술남녀>에 나왔던 남자도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기전까지는
볶음김치에 소주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술자리에서 진귀한 음식과 술 안주가 다는 아니다.
내 앞에 있는 것에 감사했으면 좋겠다.
오늘 내 술자리에 함께 해주는 이 안주에 오늘도 감사하다고.
그리고 누구와 함께 하든, 혼자 마시든
술 한 잔 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참 소중하다고.

 

 

2018.06.09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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