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에세이가 된다면/음주에세이 <술못하는 애주가>

음주에세이 <술 못하는 애주가> 집나간 딸내미

주눈꽃 2020. 11. 2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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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하면 떠오르는 것.
김이 폴폴 나는 흰쌀밥,
매콤새콤하고 아삭하게 잘 익은 배추김치,
얕은 냄비에 무를 깔고 자작하게 끓여 나온 갈치조림,
달짝지근한 양념에 밥 비벼먹는게 좋았던 제육볶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전어구이였다.

스무살 때부터 대학교 기숙사를 시작으로 내내 자취를 하며 집에서 독립해 살았다. 매년 한 두달에 한번씩 내려가거나 바쁘면 명절에 한번 씩 내려가는 게 다였다. 9월 쯤 추석이 되면 항상 내려가는데 그때마다 전어회와 구이를 찾아 먹었다. 어릴땐 오히려 자주 먹지 않았던 건데, 사회 생활하며 숱하게 다닌 횟집들은 늦여름이 되면 어느새 전어철이라고 수족관 한가득 전어를 채워넣었다. 제철이라는 말에 집에 내려가면 시장에서 전어를 사와서 집에서 함께 먹었다. 흔히 횟집에서 먹을 수 있는 그 전어가 왜 집밥 메뉴에 있게 됐을까?

내가 어릴 때부터 자라온 우리 집은 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주택이다. 집 앞에는 마당이 작게 있고, 큰 솥을 걸 수 있는 아궁이가 있다. 어릴때부터 위치는 바뀌었지만 항상 마당에는 아궁이가 있었다. 거기에서 주워온 나뭇가지나 신문지 등을 태워서 불을 지폈다. 긴 시간동안 뭘 고아내거나 할 때 주로 활용하는 곳이었다. 어느 추석에 고모들이 와서 북적이는 데 그 아궁이에 전어구이를 해먹자고 제안했다. 아궁이에 직접 구울 수는 없어서 아궁이 옆에 작은 화로 대용으로 쓸 통을 가져다가 불이 붙은 나무를 옮겨 넣어 간이 화로로 만들고 그 주변으로 우리는 동그랗게 앉았다. 창고에서 석쇠를 가져다가 씻어서 화로에 올려두고는 마당에서 전어를 올려 굽기 시작했다.

전어는 잔가시가 많은 생선이다. 그래서 가시나 뼈채로 먹는 일면 ‘세꼬시’로 먹기도 한다. 지금은 그 뼈마저도 잘 씹어 먹지만 그때는 전어를 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구이는 뼈를 다 발라먹어야하는 줄 알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선이 노릇노릇 익어갈수록 퍼지는 고소한 향. 손바닥보다도 작은 전어는 점점 겉부분이 잘 구운 빵처럼 갈색 빛으로 노랗게 변해갔고, 그럴수록 생선살은 더 잘 부서지는 것 같아 뒤집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날 먹었던 그 전어구이 그 이상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전어구이가 맛있기도 했지만, 밖에서 그렇게 마당에서 직접 굽고 오손도손 북적이며 먹었던 그 분위기 자체도 한 몫 했기 때문이다. 그날 곁들였던 술마저도 홈메이드였다. 직접 복분자로 담갔다는 복분자 담금주. 소주 대병 한 통을 다 비울 정도로 홀짝홀짝 마시기 좋았다. 너무 세지도 않고 너무 달지도 않은 적당하게 달짝찌근 하면서 쌉쏘롬한 맛이었다. 고소한 전어와 함께 먹기에 딱 좋았다.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구이가 집나간 딸내미도 집 생각을 하게 만든다.

 

2018.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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