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에세이가 된다면/음주에세이 <술못하는 애주가>

음주에세이 <술 못하는 애주가> 내 동생은 술친구

주눈꽃 2020. 11. 1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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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3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어릴 때는 까불거리며 부모님을 웃기는 통에 개그맨이 되려나 했는데
지금은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다.
술을 너무 좋아하는 아버지 때문인지
동생은 오히려 술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도 술을 마시지 않을 정도였다.
술이 쓰고 맛 없는데 왜 마시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럴때면 나는
“인생의 쓴맛을 보면 이 술은 달디 달다”며
어른 흉내를 내곤 했다.
그렇게 말하면 부모님이 어이없어하며 웃어주었기 때문에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었지만, 정말 술이 달 때도 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집에 내려 갔더니
6병짜리 묶음으로 파는 소주세트가 냉장고 옆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 아빠 술 끊었다 하지 않았어?”
“응~ 끊었어~”
“근데 이 소주들은 뭐야?”
“네 동생~”
“얘 술마셔?”

그때까지만 해도 동생이 술을 먹는 걸 보지 못했어서 놀랬다.
어느새 직장도 다니고 하니까 술을 조금씩 마시다 보니
어느새 술이 늘었는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밥 먹으면서 반주로 한 잔 씩 한단다.

군대에 다녀온 이후로 집에서 깔깔이를 잘 챙겨입는 동생이
혼자 부엌에 있는 식탁에 앉아서 라면에 소주 먹고 있기도 했다.
나는 이게 참 적응이 안되더라.
‘내 동생이 맞나?’
‘완전 그냥 아저씬데?’

학교도 잘 못찾아가서 데려다준 적도 있을만큼
아무것도 모르고 어수룩했던 동생이 어느새 사회생활을 하더니
아재스멜이 날 정도로 푹 익어버렸다.

그 이후 이제는 명절에 집에 내려가면 온 가족이 다 함께 술을 함께 마신다.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콜라나 식혜로 함께 짠하며 술자리를 즐긴다.
동생과 나는 함께 술잔을 부딪히며 술을 마시는 술친구가 됐다.

시간이 참 빠르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그러다 문득 내가 갓 스무살이 넘어 갔을때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시게 되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 함께 했던 외삼촌, 외숙모가 그랬다.
얘가 언제 이렇게 커서 우리랑 같이 술 먹게 됐냐며.
내가 동생에게 했던 말처럼.

나이가 들어도 함께 술 한잔 기울이는 때가 오기 전까진
그저 어리게만 느껴졌다가
같이 술 마시는 걸 보니 ‘다 컸다’라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나도 그때의 어른들처럼 나이가 든 거겠지?

 

2018.05.0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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