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에세이가 된다면/음주에세이 <술못하는 애주가>

음주에세이<술 못하는 애주가>이제 그만

주눈꽃 2020. 11. 1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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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들이 빽빽히 들어선 일명 먹자골목에 꼭 하나씩 있는 그것, 바로 인형뽑기. 요즘은 인형뽑기 기계들만 따로 모아 둔 뽑기방이 따로 있을 정도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에 간간히 보이는 게 다였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인형뽑기를 즐겨 하지 않지만 인형뽑기 기계를 볼때마다 생각나는 이들이 있다.

20대 중반에 친한 회사 선후배들과 정말 또래 친구들처럼 모여 놀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자주 가던 술집 골목이 있었다. 하루는 닭발집에서 여자선배 한 명과 오빠 A,B와 함께 한 잔 하고 있었는데, 일행 중 오빠 A와 B가 화장실에 간다더니만 시간이 지나도 안 오는 게 아닌가?

남자화장실에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선배랑 같이 얘기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뒤, 나타난 A오빠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인형. 술먹다가 화장실 간다고 가더니 밖에서 인형뽑기를 하고 있었나보다. 남자 둘이 술기운이 올라오니 술도 깰겸 뽑았다면서 하나 뽑아서 들고 왔는데, 뒤에 B오빠가 보이지 않는다. 말해 뭐해. 같이 뽑던 A가 인형들고 신나서 들어가니까 본인도 하나 뽑아서 들고 오고 싶었겠지.

그러나 우리는 의지의 한국인. 결국 B도 이어서 인형 뽑아들고 왔다. 그래도 애써 뽑아 온거니까, 인형 너무 귀엽다고 인형뽑기 잘한다고 좋아해줬다. 그게 시작이었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남자 둘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엉덩이 들썩거린다. 술은 먹는 둥 마는 둥 또 얘기하다보니 어느새 쪼르르 나갔다 얼마 뒤 인형을 또 들고 온다. 그렇게 테이블에는 인형이 쌓여갔다.

취했네 취했어. 세상에 난 술 취해서 인형 뽑는 술버릇을 가진 분들은 처음 봤다. 나중에 함께 있던 여자 선배도 그만하라고 화냈는데, 진짜 한 번만 한다고 하면서 동전을 짤랑거렸다.
그놈(?)들의 인형뽑기는 그 이후로도 끝나지 않았다. 나중에는 인형에 성이 안 찼는지 탁상용 알람시계와 호신용 스프레이 등 다른 뽑기 기계까지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벽까지 그 먹자골목에 있는 뽑기 기계 순회를 다 마치고 나서야 우리의 술자리는 끝이 났다.

취중 인형뽑기는 매우 위험했다. 인형을 쥐고도 힘없이 떨어뜨려버리는 집게에 괜한 오기가 발동하게 된다. 얼마 쓰는지도 가늠하지 않고 기계에 동전을 넣게 만든다. 오로지 내가 뽑고 싶은 인형만 보며 조이스틱을 움직이는 눈동자가 생각난다. 다음날 텅빈 지갑과 방구석에 나뒹구는 인형과 쓸데없는 물건들을 보고 싶지 않다면 음주인형뽑기는 이제 그만해야한다.

 

2018.03.22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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