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에세이가 된다면/음주에세이 <술못하는 애주가>

음주에세이 <술 못하는 애주가> 지금은 피맥시대

주눈꽃 2020. 11. 1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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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피맥시대

삼겹살엔 소주, 치킨엔 맥주라지만 ‘피자에 맥주’도 참 잘 어울린다. 아쉽게도 여전히 대부분의 피자전문점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다. 나의 오랜 술친구였던 H선배는 피자에 소주를 곁들이면 맛있다고 알려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피자는 콜라에 먹는 음식이라고만 생각해서 그녀의 발언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한 번 그렇게 먹어본 이후로 나는 피자를 집으로 배달시켜서 소주와 마시며 일명 ‘피쏘’를 즐기곤 했다.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의 피자치즈와 쓰디쓴 소주의 조화는 느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이제는 수제맥주집이나 호프집에서 피자를 안주로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상상하지 못한다면, 직접 경험에 보길.

 

하지만 지금은 ‘피쏘’가 아니라, ‘피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요즘 들어 수제맥주 전문점이 많이 생기고 있다. 그 동안 일반적으로 식당에 가면 항상 볼 수 있었던 카땡이나 하이땡과 같은 맥주로는 이골이 난 모양이다. 요즘은 편의점에서 저렴하게 세계맥주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맥주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서 그런지 수제맥주집도 인기몰이 중이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수제맥주집이 있어 남편과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이 수제맥주집도 ‘피자와 맥주’를 함께 마실 수 있도록 ‘피맥집’ 컨셉인 맥주집이었다. 메뉴판을 보니 특이하게도 피자를 1조각씩 파는 거다.

 

나 : 오빠, 여기는 왜 피자를 한 개씩 팔지? 1조각에 4천원이네?

남편 : 2명이면 피자 한 판은 거뜬하지 뭐.

나 : 그래~ 일단 피자 먹어보고 봐서 배고프면 더 시키자.

 

 

피자는 항상 집에서 한 판씩 시켜먹던 버릇이 있어 반반피자로 1판을 주문했다.

우리는 창가에 있는 의자가 높은 bar형으로 된 2인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주문 후에 테이블 세팅을 해준다고 직원이 둘이나 오셨다. 테이블 위에 있던 메뉴판과 비치되어있는 소스와 수저통 등을 모조리 치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당황했다. ‘뭐야? 세팅해주는 게 아니라, 그냥 다 치워버리는 거 같은데?’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드디어 피자가 나왔다. 피자를 보고 너무 놀라 헛웃음만. 그 2인 테이블을 다 덮어버릴 정도로 큰 피자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아까 직원이 와서 왜 테이블을 다 치워주었는지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속으로 ‘이 정도면 그냥 4인석으로 자리를 옮기시라고 권해주시지’하는 생각도 했다. 사람들의 눈길이 우리의 테이블 한가득한 피자를 볼 때마다 ‘둘이서 저 큰 피자를 다 먹겠어?’하고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왠지 의도치 않게 푸드파이터가 된 느낌이 들어 쓸데없이 정의감마저 들었다.

 

나 : 오빠 엄청 크다 진짜~ 푸하하! 야, 이걸 어떻게 먹어~

남편 : 나는 배고파서 다 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나 : 아, 진짜? 난감하네. 어쩐지 한 조각씩 팔더라~ 이렇게 크니까 한 조각씩 팔지!

 

 

잠시 후,

 

 

나 : 난 못 먹겠어.

남편 ; 하나만 더 먹어~ 진짜 나도 많이 먹어서 배불러.

 

 

나중에는 서로 피자는 한 조각이라도 더 먹이려는 사랑에 눈물겨웠다. 그럼에도 그 대형피자는 참 맛있었다. 도우가 얇은 씬 피자 스타일의 반반 피자였다. 그나마 도우가 얇은 피자라서 우린 거의 다 먹는 데 성공했다! 그날 내가 좋아하는 페퍼로니 피자를 정말 다시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질리게 먹고 나왔다. 분명 수제맥주집이었는데 피자만 생각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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