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에세이가 된다면/음주에세이 <술못하는 애주가>

음주에세이<술 못하는 애주가> 술이 나를 결혼시켰다.

주눈꽃 2020. 11. 1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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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에세이<술 못하는 애주가>

“남편하고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결혼한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상황에 따라 두 가지의 대답을 한다.
어른들이거나 나의 개인적인 부분까지 알려주기엔 조심스러운 분들,
그리고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분들에게는
“같은 회사 다니면서 만났어요.”

개인적으로 친하거나 스스럼없이 나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술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술 마시면서요.”
라고 말한다.

둘다 맞는 말이다. 회사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한 회사에 다니면서 함께 회식하곤 했지만
알고 지내는 회사 동료 사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1년 동안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결혼까지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술’ 때문이었다.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처럼 정우성이 손예진에게
소주 한 잔 가득 따라 주며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 라고 말하며 사귀는 건
정우성이라서 가능한 거였다.

직원들끼리 술자리를 자주 가지던 무렵
함께 마시던 직원 중에 지금의 남편이 함께 있었다.
그 많지도 않는 직원 중에서 술을 잘 마시는 분이라
술잔을 부딪히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자작하면 맞은 편에 있는 사람이 3년 간 재수 없다”는 말을 하며
서로의 술잔을 채워주기 바빴고,
누군가 자작을 할 때마다
“그러다 나 정말로 재수 없으면 책임지실꺼냐”며
시덥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멋대가리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었던 시작이었는데
그때는 취기였는지 콩깍지가 씌어서 그랬는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멋진 고백 하나 없이 우리의 연애는
그렇게
스며들듯 시작되었다.

지금은 결혼했지만
그때만 해도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나에게
연애란 그저 재미있는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함께 술을 즐기고, 대화가 통했으면 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남자이길 바랐다.

그런면에서 지금의 남편은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조용히 있는 편이었고,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었다.
술을 마시면 조금 덜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렇게 친해지기까지도 1년의 시간이 걸렸으니까.
내가 생각했던 연애의 대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결혼까지 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그때 마셨던 그 ‘술자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결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술이 나를 결혼시킨 것이다.

 

2018.05.02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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