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에세이가 된다면/음주에세이 <술못하는 애주가>

음주에세이 <술 못하는 애주가> 너 족발 좀 뜯어봤니?

주눈꽃 2020. 11. 2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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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 시절, 나는 회식 장소를 정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풍채가 좋고 목청이 큰 어르신들이라
몇 명만 모여도 시장에 들어온 것 마냥 시끌벅적했다.
그런 우리의 회식은 다른 손님들에게도 민폐니까.
따로 방이 있는 자리로 예약하길 바라셨다.
마침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족발 집이 있어서 가게 되었다.
문을 닫아 놓고 먹을 수 있는 방이고 깔끔하고 넓어서 마음에 들어하셨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주문할때 단가에 비해 적은 양.
아무래도 1만원대의 고기를 몇 인분씩 구워먹는 것보다는
족발 대자로 몇개 시키는 것이 훨씬 비싸다.
그런데 큰 접시에 나오는 썰어진 살코기 밑에는 큰 뼈가 있다.
쌈도 싸 먹어 보고, 막국수도 시켜먹고 했지만 배가 별로 안 찼다.
내가 위대한 편이긴 하지만 다행히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다들 배부르지 않아서 그런지
아쉬운 듯 회식 분위기도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차로 다른 곳을 가기에도 그 족발집 주변에 다른 먹을만한 곳이 없어서
쉽사리 자리를 옮기기도 애매했다.
그렇다고 그냥 앉아 있자니 그것도 그렇고 해서
다들 밍기적거리면서 삼삼오오 나누어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한참 이야기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어느새 발톱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음식이 앞에 있으면 계속 먹게 된다.
아마 누가 먹으라고 쥐어준 것이라고 확신한다.

개인적인 취향 고백이긴 하지만
살코기 부분만큼이나 나는 발톱 부분이 쫄깃해서 맛있는데
회사에서는 사실 발톱을 들고 뜯는게 쉽지 않다.
집에서 혼자 먹을때나 시선 상관없이 먹지만
회사에서 하는 회식이 아니더라도
족발집에 가서 먹으면 발톱을 들고 뜯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거기서 발톱을 발골하고 있었다.
‘아차, 내가 너무 자연스럽게 발톱을..’하고 내려놓으려던 찰나에
옆에 계셨던 팀장님이 나를 보셨다.
흠칫 하시는 가 싶더니 이내 웃으시면서
“이게 진짜 맛있는 부위인데 어떻게 알고~ 족발 좀 뜯어봤나봐~?”하셨다.
그러면서 덩달아 맨 밑에 있는 큰 뼈를 들고 뜯기 시작하셨다.
내가 민망할까봐 같이 뜯어준 것이다.
팀장님의 진한 배려에 감동했다.
그렇게 회식자리에서 팀장님과 내가
큰 족발 뼈와 발톱으로 커밍아웃을 하고는
나란히 들고 뜯고 있으니 다들 그 모습이 부녀지간 같다며 웃었고,
몇 분은 나의 발골쇼를 보며 젊은 사람 같지 않게
야무지게 잘 발라먹는다며 감탄하기까지 했다.

당시 혼자 자취하던 내가 집에서 혼자 족발을 시켜먹으면서
숱하게 발톱을 발라먹은 것이 이렇게 빛을 발할 줄이야...

 

2018.06.21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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