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에세이가 된다면/음주에세이 <술못하는 애주가>

음주에세이 <술 못하는 애주가> 비오는 부산

주눈꽃 2020. 11. 2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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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 날씨가 맨날 이래?”

머리와 옷가지가 휘날리는 부산역 앞.

태어나서 부산 여행은 두 번이지만 매번 갈 때마다 비가 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행이었는데

왜 매번 비가 오는 걸까.

어딜 가든 큰 맘 먹고 집을 나서는 날이면

대부분 비가 왔다.

심지어 신혼여행으로 갔던 하와이에서도 비를 쫄딱 맞으며 돌아다녔으니까.

그래서 내 주변의 지인들은 나를 보고

비를 몰고 다닌다 했을 정도.

 

친구와 처음 부산을 갔던 날은

날씨가 나쁘지 않았다.

3박 4일로 떠났던 여행의 막바지에서

특히나 가장 기대했던 바닷가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강풍이 부는 바람에

우산도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낮에는 덥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던 9월의 어느 날

우리는 그 비바람에 바다의 경치를 감상하기에 너무 추웠다.

 

해운대 해수욕장을 가서도 오래 있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는 길에

유명한 돼지국밥집을 찾아두었는데 찾아갈 여유가 없었다.

부산에서는 돼지국밥집이 유명하니까

외관이 넓고 좋아 보이는 곳이 맛집이겠다 싶어 허둥지둥 들어갔다.

 

밖은 비바람이 부는데 가게 안은 따뜻하고 고요했다.

흔히 보는 해장국집의 식당 내부였다.

나무 느낌의 크고 넓은 테이블과 길쭉한 벤치형 의자가 있고

테이블 위엔 김치와 깍두기, 새우젓 같은 양념과 수저통이 기본으로 세팅이 되어있었다.

따로 부추무침과 기본 찬을 내주셨다.

 

하얀 국물에 돼지고기가 살짝 보이는 돼지국밥이 나왔다.

뚝배기에서 후끈한 열기가 피어올라 카메라에 김이 자꾸 서린다.

담백한 국물에 먹는 것도 좋지만

얼큰하게 먹는 걸 선호한다면 부추무침이나 깍두기 국물을 넣어 뻘겋게 해서 먹어도 좋다.

첫 맛은 항상 기본을 맛본다.

그리고는 새우젓을 넣어 간을 맞추거나 본인 취향에 따라 이것저것 넣어 만들어 먹는다.

나는 ‘다대기’라고 불리는 다진 양념을 따로 달라고 해서 얼큰하게 즐겼다.

 

이런 좋은 안주를 두고 소주가 빠질 수 없지.

역시 국밥은 소주가 잘 어울린다.

소박하고, 뜨거운 뚝배기를 훌훌 불어 한 수저 하고,

차가운 소주를 촤악 끼얹어 불을 꺼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수더분한 이 느낌이 좋았다.

마지막에 뚝배기를 받침에 비스듬히 걸쳐 바닥까지 싹싹 긁어 비우고 나면

등에서 땀이 흐르는 것 같이 몸이 뜨끈하게 데워져 있다.

밖에서 비바람이 치는 것을 잊을 만큼 따뜻한 식사 겸 좋은 안주였다.

 

여행 중에는 항상 술을 적당히 즐겨야하기 때문에 매우 힘들었다.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전히 힘들다.

다음 날 일정에 지장이 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는 많이 걷고 구경하느라 바쁜 일정이기 때문에

몸이 피로해서 그런지 술을 마시면 금방 취하더라.

이런 국밥을 두고도 소주 한 병을 채 다 비우기가 부담되어 남기고 왔었는데

그게 아직도 생각이 난다.

 

비 오던 부산의 그 날은

나에겐 춥고, 뜨끈했고, 미련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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