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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글쓰기] 에세이 #4. 첫 출근의 기억

주눈꽃 2020. 10. 13.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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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의 기억


모든 직장인들에게는 첫 직장의 기억이 있다.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이 더 많이 남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좋은 기억처럼 남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새 학기가 맞이한 교실에 들어선 것처럼 낯설었던 분위기. 애써 비빌 곳을 찾아 방황하던 눈동자. 그리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시작하기 위해 겪어야했던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의 시간들이 있었다.

내 첫 회사는 보안·경비회사였다. 그저 방학 때 집에서 놀면 뭐하나 하는 생각에 지원했던 기숙사 있는 회사. 어떤 업무를 하는지 정확히 모르면서 직원이 6천명이나 있는데 이상한데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면접을 보고, 입사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는 21살이 아닌가. 첫 회사의 첫 면접을 그렇게 합격해놓고, 신입입문교육을 다녀왔다. 100명이 넘는 직원 중에 여직원 6명뿐이었고, 공주대접 받으며 23일간의 교육을 마쳤다. 교육 내용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회사에 대한 소개를 첫날 했었고, 그 외에는 흡사 중·고등학교 단체로 가던 수련회나 어릴 때 교회에서 갔던 여름성경학교의 프로그램 같았다. 업무 시 필요한 응급처지와 소화기 사용법, 보안과 안전에 관련된 업무를 주고 배웠다. 깜깜한 밤에 산행까지 해야 했던 고된 훈련도 있었다.

근무지가 삼성 기흥사업장으로 정해졌을 때, 같이 교육에서 만났던 3명의 동기와 같은 곳에 배정되었다. 그래도 새로운 곳에 같이 간다며 좋아했지만, ·야간을 번갈아 근무해야하는 곳이어서 동기라고 해도 스케줄이 맞지 않으면 만나기가 힘들다는 걸 나중에 일하면서 알게 되었다. 3개의 조가 교대로 11시간, 13시간씩 나눠서 근무를 했다. 내가 있는 조에서는 총 6, 그 중 막내는 나였다. 근무하는 곳은 총 3군데였고, 6명의 여직원이 각각 2, 1, 3명 이렇게 떨어져 있는 근무지에서 근무했다.

첫 출근하던 날부터 대형 사고를 쳤던 것을 기억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주 업무는 삼성사업장 안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출입증 발급·반납하는 일이었다. 삼성사업장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출입증을 찍고 들어가야 한다. 사원증이 없는 외부인이 들어갈 경우, 직원이 출입해야 할 분의 인적사항을 기재하여 부서장에게 전자결재를 올린다. 결재가 완료되면, 출입증 발급 시스템에서 주민등록번호로 조회 및 확인한 뒤 신분증을 데스크에 맡기고 출입증을 발급받아 가면 된다. 반대로 업무가 끝나면 출입증을 데스크에 반납하면서 신분증을 가져가면 되는데, 내가 돌려줘야할 신분증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준 것이다.

하루에도 한 곳에서 1천여 명의 사람들이 출입을 하는지라 신분증이 많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 분의 신분증을 찾느라고 일하던 여직원 분들이 비상이 걸렸다. 첫 날부터 이런 대형 사고를 친 신입은 나밖에 없었다며, 빠른 손놀림으로 신분증을 찾는 와중에 나를 흘겨보던 차가운 눈초리를 견뎌내야 했다. 그때 그 선배들과는 나중에 친해졌지만, 그날 그 표정과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다행히 선배들의 빠른 조치로 신분증을 잘못 들고 가신 분을 찾았고, 흔쾌히 오셔서 바꿔 가신 걸로 일단락되었다.

의기소침해진 나로서는 퇴근 후 조용히 쉬고 싶었지만, 하필 그날 조별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왜 하필 오늘이냐며 하늘을 원망했다. 사고 쳐놓고, 회식까지 빠지면서 미운털 박히고 싶지 않아 참석했던 내 인생의 첫 회식. 여직원과 남직원 모두해서 20여명 되는 한 팀이 고깃집에서 회식을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좌불안석이었겠지. 고기를 어디로 먹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죄송하고 불편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 동안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그 날의 나를 잊고 지냈다. 처음 시작하면서도 잘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도, 글을 쓰는 것도 처음엔 다 어렵다. 실수도 하고 사고도 칠 수 있다. 그래도 함께 하는 이들이 있고, 알려주면서 지지해주고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견뎌낼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때 그 시절에 함께 했던 선배와 동료들 모두 너무 그리운 오늘이다.



(원고지 10.6장)

2016.10.1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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