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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글쓰기] 에세이 #6. 나는 혼술이 좋다

주눈꽃 2020. 10. 15.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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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술이 좋다.


‘나는 혼술이 좋다. 하루 종일 떠드는 게 직업인 나로선 굳이 떠들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이, 이 고독이 너무나도 좋다. -드라마 《혼술남녀 》중.‘


요즘 혼자 밥 먹는 시대를 넘어서서 이제 혼자 술 먹는 시대가 왔다. 혼자 술 마시는 것을 줄여서 '혼술'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가 나오기 전부터 나는 이미 혼술을 즐겨왔다.
내가 처음 혼술을 할 때까지만 해도 여자 혼자 술 마시면 ‘사연 있어 보인다’, ‘팔자가 처량해진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별로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직장인 시절 선배나 동료가 ‘퇴근하고 집에서 뭐해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술 한 잔 하려고요“라고 답했고,그러면 보통 ”누구랑요?“ 라고 물어본다. ”그냥 혼자요“ 라고 대답하면,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왜요?‘ 혹은 ’남자친구 없어요?‘나 ’외롭게 왜 혼자 마셔요~ 친구라도 같이 마셔요.‘ 등 다 비슷한 이야기들을 했다. 그 중엔 술을 사주겠다는 분들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혼자서도 잘 마셨다. 처음에 저렇게 대답했지만, 나중엔 약속이 있다고 말하고는 집으로 가곤 했다.

나는 첫 회사를 다니면서 술을 배웠다. 그럼에도 내가 혼자 마시는 걸 즐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술을 마실 사람이 회사 사람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회사 끝나고 회사사람들과 술을 마시면 술 마시는 내내 회사 이야기만 하게 된다.퇴근을 해도 퇴근한 것 같지가 않았다. 상사나 선배와 함께하는 술자리는 이야기도 잘 들어주며 호응해야하고, 후배라도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이야기를 하면 소문이 빠른지라 누구에게도 속내를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술자리가 사회생활의 연장인 것만 같아 자꾸 피하게 됐다.

신입 때도 야간근무를 하고 아침에 퇴근하면 기숙사 휴게실에서 몽롱한 정신으로 캔맥주를 따며 TV를 보는 시간도 좋아했다. 하지만, 내가 자취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혼술을 즐기게 되었다. 온전히 나 혼자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을 때, 비로소 나는 회사를 떠나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퇴근하는 길에 캔맥주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둔 뒤, 샤워하고 나오면서 냉장고를 열어 캔맥주를 한 캔을 딴다. 따자마자 목이 찢어져라 벌컥벌컥 들이켜는 순간, 그 짜릿함과 상쾌함이 나를 자꾸 혼술하게 만든다. 혼자 사는 집, 아무도 말 하지 않지만, 나에게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버텼구나. 이 맛에 산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내가 혼술이 좋은 이유다. 결혼했지만, 난 여전히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소박하게 조건을 하나 추가한다면, 캔맥주가 가득한 냉장고가 있다면 좋겠다.


(원고지 7.1장)

2016.10.2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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