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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글쓰기] 에세이 #9. 헌혈의 첫 경험

주눈꽃 2020. 10. 1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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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의 첫 경험
 


헌혈을 처음 시도했을 때는 고등학교 2학년. 혈액원에서 큰 버스를 타고 학교에 왔고, 학교 강당에서 헌혈을 한다고 줄서서 검사를 받으러 갔다. 이미 검사를 끝낸 친구들은 하나 둘 강당 바닥 여기저기에 누워 피를 뽑고 있었다. 당시 나에겐 그 광경이 상당히 괴기스러워보였는데, 마치 피난민들이 아파서 누워있는 모습이랄까. 사실 나는 피를 뽑는 걸 무서워한다. 어릴 때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토피 때문에 팔 쪽에 핏줄이 잘 안보여서 주사바늘 꽂는데 실패한 적이 많았다. 더 아픈 손등에 주사바늘이 무섭다.
 
안 그래도 무서운데, 다행스럽게도 헌혈을 하기 전에 감기에 걸리거나 아픈 친구들은 할 수 없다고 했다. 무서워서 망설이던 내 손끝에 어느새 작은 침이 찔렀다. 선생님이 내 손을 잡자마자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고, 눈을 질끈! 감았다. 피를 내서 투명한 액체가 든 컵에 피 한 방울을 똑 떨어뜨렸다. 피가 둥둥. 그걸 보던 선생님이 잠을 잘 못 잤냐며, 오늘은 헌혈이 어렵다고 했다. 순간 드는 안도감에 큰 한숨, 그리고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것도 잠시, 어느새 다들 누워서 헌혈하는데 주사바늘에서 자유로운 나는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누워있는 친구들 주위에서 쫄래쫄래 구경하며 몽쉘을 얻어먹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한 번도 헌혈의 기회가 없다가 몇 년 전에 처음 내발로 헌혈의 집으로 가서 첫 헌혈을 하게 되었다. 순전히 내 의도라기보다는 당시 남자친구가 헌혈을 자주하는 편이어서 내게도 권했던 것이었다. 보기에는 병원 같은 곳이었는데, 컴퓨터로 설문조사하듯이 질문에 답을 하고 나면 의사와 상담하는 곳에 가서 간단히 컨디션에 대한 상담을 하고, 혈압을 잰다. 그리고 그때처럼 손끝에 침으로 찔러 피를 낸다.
 
그 삼박자가 딱 맞춰지는 그 날, 첫 헌혈을 했다. 그날 처음 본 주사바늘은 꽤 굵었고, 겁이 났다. 다행히 헌혈의 집에 계신 직원 분들이 모두 친절했다. 내가 첫 헌혈이라는 걸 알고 나서 더 신경써주시려고 하는 게 눈에 보였다. 내게 큰 용기 내신 거라며, 안 아프게 해드린다고 하시면서 말도 자꾸 걸어주시고 그랬다. 폴라로이드 가져와서 첫 헌혈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실 정도로 챙겨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매일 많은 분들이 오셔서 헌혈하고 가실 텐데 그렇게 친절하게 하실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첫 헌혈에 대한 추억을 좀 더 따뜻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겨주시려고 노력하신 분들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분들 덕분에 나는 그 이후에도 직접 헌혈을 하러 가기도 할 만큼 주사바늘의 무서움을 이겨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왔을 때도, 집 근처에 혈액원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 헌혈을 하러 갔을 정도. 사실 자주 하고 싶어도, 다시 헌혈을 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기간이 좀 있어서 그런지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 그때 생각이 나서 조만간 혈액원을 다시 찾을 생각이다.
 
(원고지 7.7장)

2016.12.27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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