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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글쓰기] 에세이 #15. 필리핀의 첫 인상

주눈꽃 2020. 10. 2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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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첫 인상

 

 

스물한 살이 막 되었을 한 겨울,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닌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에 처음 간 적이 있었다. 당시 대학 등록금을 포함한 생활비라는 명목으로 기숙사비까지 학자금 대출을 받아 다니고 있었고,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용돈 외에 학기 중에는 학교 근처에 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다. 일반적으로는 여행을 꿈꿀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에 몇 명을 뽑아 자매 결연을 맺은 학교로 어학 연수 겸 다녀올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스무 살, 그해 가을학기에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겨울방학이 되자마자 에버랜드로 실습을 나갔다. 한겨울에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추운 날씨에도 에버랜드에서 실습하고 나서 받은 실습비를 몽땅 털어 필리핀으로 2주 간의 어학연수를 다녀오게 되었다.

어학연수라고는 하지만, 사실 2주라는 짧은 기간동안 영어실력이 활 늘어날 리 만무했다. 교수님도 문화교류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자 했다. 어쨌든 운이 좋게 나는 필리핀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2주간 평일에는 연계된 대학의 학교 수업을 들었고, 주말에는 필리핀 관광을 하는 프로그램이어서 학교보다는 주말이 기다려지는 날들이었다.

처음 필리핀 마닐라에서 지낼 숙소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묵을 방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호텔처럼 호화로운 걸 바라지는 않았지만, 도미토리의 방문은 철장이 덧대어져 있어서 감옥이 떠올랐을 정도였다. 방안에는 침대 3개와 옷장과 책상이 있었다. 방 안에 화장실이 하나 있었지만, 물이 좋지 않았다. 수도를 틀면 갈색 녹물이 나왔고, 조금 씻겨 나간 후 맑은 물이 나오면 씻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뻣뻣해지는 기분이었고, 눈이 안 좋아 렌즈를 꼈던 우리는 괜히 찜찜한 기분에 안경을 쓰는 바람에 외모를 포기해야 했다. 방에서는 가끔 벌레도 나왔고, 넓긴 했지만, 불편한 게 많았던 숙소였다.

게다가 거리에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누워 구걸하거나 잠을 자고 있기도 했다. 길가다가 깜짝깜짝 놀라서 철렁했던 심장을 안정시키기에 바빴다. 빌딩의 건물 입구에는 주로 경찰처럼 총을 소지한 사람들이 1명씩 건물을 지키고 있었고, 밤에 자려는 찰나에 밖에서 울리는 총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총소리를 들었던 밤, 같이 방을 쓰던 친구 중 1명은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훌쩍거리기까지 했다. 첫 해외에서 신기하고 좋은 이미지만 상상했었지만,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대형 고속버스를 타서 창밖으로 구경하던 때까지였다. 숙소에 도착하면서부터는 처음 보는 그 광경들과 새로운 문화들에 놀라움과 충격의 연속이었다.

(원고지 7.2장)

2017.2.5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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