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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글쓰기] 에세이 #16. 입력봉사의 시작

주눈꽃 2020. 10. 2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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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봉사의 시작.

 

입력봉사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자도서 및 점자책을 제작하기 위한 종이로 된 책을 보고 한글 프로그램에 직접 타이핑하여 입력하는 봉사활동이다. 보통 점자도서관이나 시각장애인 복지관 등의 시설에서 자원봉사자를 교육하여 진행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나는 얼마 전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교육 후, 연습하는 시간을 거쳤다.

 

점자책이나 전자도서를 위한 봉사는 크게 입력봉사와 낭독봉사 2가지가 있다. 입력봉사는 다시 시설에 내방하여 입력실에서 직접 입력하는 방식과 집에서 책을 하나 정해서 입력하는 재택입력봉사 방식 2가지로 나뉜다. 복지관이나 도서관마다 다르지만 교정/교열이나 점자책 편집 및 제작관련 봉사를 하는 곳도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건 시간 사용이 자유로운 재택입력봉사였고, 재택입력봉사를 하기 위해 서울/경기에 있는 인근 복지관과 도서관을 검색해보았다. 구별로 구청이 있듯이 구별로 하나씩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각장애인복지관이나 도서관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멀쩡한 나도 이렇게나 찾기 어려운데, 시각장애인분들은 얼마나 찾기 어려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상생활도 어려우시지만, 독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여의치 않겠다는 생각도 들어 안쓰럽기도 했다.

 

어렸을 때 나도 시력이 좋지 않았다. 실명까지 갈 일은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때,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나름 큰 수술을 2번이나 했고, 수술 후에 눈에 붕대를 감아 눈이 안 보이는 생활도 겪어보았다. 당시 엄마가 밥도 떠먹여줘야 겨우 먹을 수 있었고, 화장실도 혼자 가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엄마와 동행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눈의 소중함을 잊고 살때가 많은데 이번 입력봉사를 겪어보면서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눈이 안보이면 너무 불편하구나하고 깨달았던 기억이 났고, 더욱 이 봉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복지관이나 도서관에서 각각의 차이는 있으나, 직접 겪은 방식에 의하면 내가 갔던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는 입력봉사 교육을 1시간 정도(실제로 40여분 정도) 듣고, 바로 책을 지정해서 재택으로 하지 않는다. 설명을 들어도 바로 적용해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실습을 해보는 시간을 갖는데, 10시간 정도 복지관 입력실에서 입력을 해보고 담당 선생님께 검수를 받는다. 입력하면서 궁금했던 거라든지 틀린 내용들을 체크 받고 다시 수정 후에 귀가하면 된다. 하루에 3~4시간씩 3~4일 정도 나와서 하면 10시간을 채우는데, 그 이후에 지정된 도서리스트에서 책을 지정해주시면 재택봉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책은 분량에 따라 2~3개월 정도 기한이 정해져 있고, 지정 도서는 별도로 구입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려서 입력한 뒤 파일만 보내주시면 된다고 한다. 책은 입력 후, 파일과 함께 도서 기증 할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복지관 입력실에 들어가면 PC가 있는 자리마다 지정 책들이 비치되어 있고, 정해진 자리에서 릴레이로 책을 입력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나는 재택으로 할 거라서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조금 쉬운 책으로 연습했지만, 하루는 입력실 내에 있는 책으로 연습해보았다. 국가고시와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면접법에 관련된 도서라 내용이 어려웠다. 입력하는 내내 쩔쩔 맸지만, 생각해보면 책이란 종류는 참 다양하기 때문에 이런 책이 필요하신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삶과 직장에 직결되는 책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책이 아니라 그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하는 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니, 그 어려운 책도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고쳐나갔다.

 

드디어 오늘, 10시간의 교육이 끝났다. 봉사를 마치고 집에 가기 전, 재택봉사 방식에 대해 한 번 더 설명을 듣고, 지정 도서를 받아왔다. 첫 도서는 상처받지 않는 삶이라는 도서이다. 내게도 처음으로 혼자서 한 권의 책을 모두 타이핑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했다. 첫 시작이라 설레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책 한 권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내 인생에서도 새로운 경험이지만, 나눔에 있어서도 새로운 형식의 나눔이라 두근거리는 마음이다.

 

(원고지 11.1)

2016.12.2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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