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에세이가 된다면/음주에세이 <술못하는 애주가>

[술 못하는 애주가] #1. 말짱 도루묵

주눈꽃 2020. 11. 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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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짱 도루묵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뜨끈한 국물을 종이컵에 담아 들고 호호 불어먹던

오뎅(‘어묵’이라고 해야 맞지만 ‘오뎅’이라고 말하는 게 더 익숙하니까)을 파는 포장마차.

학생들에게는 방과 후에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오뎅 한 두 개와 떡볶이를 곁들여 먹는 추억의 간식일 텐데

애주가들에게는 조금 다르다.

 

뜨거운 오뎅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몸을 데워주면

크~ 하며 소주 한 잔이 생각나는 좋은 안주가 된다.

특히 오뎅 국물에 게, 무, 고추 등을 넣어

해물 특유의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 맛이 나게 하는 곳을 만나면

소주 생각에 몸서리를 치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정말 진지하게

‘가방에 팩소주라도 갖고 다녀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소주를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술 마실 수 있는 오뎅집을 찾다가 발견한 곳이 바로 을지로에 있는 이 오뎅바이다.

결혼 준비 때문에 종로에 귀금속거리와 한복을 맞추러 갔었는데

그때 우연히 알게 된 곳. 마침 근처에 갈일이 있어 전화로 물어보고 방문했다.

 

보통 오뎅바라고 하면 심야식당에 나오는 일식집이나 이자카야 같은 곳이 많은데

나의 취향은 지극히 아재 취향이다.

수더분하고 아저씨들이 득실거릴 것 같은 작은 술집이다.

게다가 내부 테이블 배치도 독특해서 재미있다.

오뎅을 끓이는 그 마차를 몇 대를 가져와 ㄱ자 모양으로 줄지어 세워둔 것 같다.

그런 테이블 양옆으로 쭈루룩 앉게 되면

오뎅테이블 맞은편이나 옆자리에 다른 사람과 합석한 기분으로 술을 마시게 되는 곳이다.

 

가장 추천하는 이유는 바로

나처럼 배고플 때 기다리는 게 힘든 사람에게는 딱이라는 것!

그냥 자리에 앉자마자 오뎅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추천하는 메뉴는 바로 ‘알도루묵구이’.

11월에서 12월까지 제철이라는 도루묵이 알이 꽉 차있을 때 먹으러 가시라.

보통 알탕에 들어가는 알과는 다른 식감의 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알이 꽉 차다 못해 튀어나오다시피 하는 알을 뽀독뽀독 씹어 먹고

알의 고소함과 생선구이의 그 불향을 충분히 느낀 후에

마지막에 시원한 소주를 한잔 탁 털어 넣으면 입안이 말끔해지는 마법!

 

처음에는 그 도루묵의 알이 생각보다 크고

어느새 알을 한 알이라고 놓칠까

세상 섬세한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당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젓가락으로 콩 집는 것보다 더 난이도 높은 도루묵 알 집기.

(그냥 편하게 숟가락을 쓰자.)

 

그러다보면 때가 되면 찾는 철새처럼 매년 도루묵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거리가 조금 있어서 자주 갈 수 없지만 매년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그 도루묵을 양껏 먹고 오기 위해 맘먹고 다녀오게 된다.

항상 가면 몇 년은 도루묵 생각 안날 정도로 포식하고 오는데도

다음 해 겨울이 되면 말짱 도루묵.

 

(원고지 9.4장)

 

2018.01.19씀

2018.04.18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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